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팔 전투 (문단 편집) === 강태공 영국군의 낚시질과 낚인 일본군의 오판 === 영국 제14군 사령관 윌리엄 슬림 중장은 즉시 대비책을 마련했다. 슬림 중장은 우선 아캡 방면에 있는 제15인도군단 중에서 제5, 제7인도사단을 빼내어 임팔과 디마푸르에 파견하는 동시에 제33인도군단에서도 제2사단과 제50인도전차여단을 증파하는가 하면 제14군의 예비대 인도전차사단도 이 지역에 투입했다. 그리고 현지의 제4군단에게도 임팔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제4군단 예하의 제17인도사단은 이미 일본군에게 퇴로가 끊겼고 제23인도사단도 우크룰 남쪽에서 포위당하고 말았다. 이어 제23인도사단은 암호문서 등을 소각한 뒤 그 일부가 탈출에 성공했으나 일본군 제33사단의 사사하라 연대와 대치중인 제17인도사단은 좀처럼 퇴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제17인도사단은 개전 초부터 일본군 제33사단과 맞서 싸워왔으며 지난 2년 동안에는 무려 30회 이상이나 교전한 경험 많은 베테랑 부대였기에 [[동남아시아사령부|동남아시아연합군]] 최고사령관 [[영국 해군|해군]] [[대장(계급)|대장]] [[루이 마운트배튼|마운트배튼 경]][* 1970년대에 [[IRA]]의 폭탄 테러로 왕실 요트와 함께 폭사한 그 사람 맞다.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의 외삼촌이다.]도 부대의 탈출을 독려하려고 했다. 이때 제4군단장인 제프리 스쿤스 중장은 이 사단을 철수시키고자 기발한 구상을 하였다. 제23인도사단 중 1개 연대만을 철수시킨 후, 나머지 병력으로 제17인도사단의 구원 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3월 14일, 토이톰 고지의 어느 산허리에 진을 치고 있던 해당 연대 철수 지시가 내리자 연대는 수많은 트럭과 전차를 이끌고 임팔로의 철수를 시작했고, 바로 그 철수 행렬이 산허리를 거의 통과하고 있을 때 일본군 정찰부대가 그것을 발견했다. 정찰부대가 이 사실을 곧 연대 본부에 보고하자, 연대장 사쿠마 대좌는 제33사단장 야나기타 중장에게 "영인군이 총퇴각했다"고 보고했다. 그 말에 사단 사령부는 전선 근처까지 이동했는데, 철수했다던 제17인도사단은 철수는커녕 압도적인 포화를 퍼붓고 있었다. 많은 전차가 전차포로 일본군의 최일선 진지를 쑥밭으로 만드는가 하면, 날아드는 보고는 '영인군의 증원부대가 계속해서 전선에 도착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3월 23일 밤, 야나기타 중장은 사사하라 연대로부터 문제의 전보를 받았다. >본 연대는 암호서류를 소각하고 군기를 파기한 후 전원 옥쇄의 각오로 분투하고 있음. 이 전보를 보고 야나기타 사단장은 '연대 전멸이구나!'라고 생각해 철수를 명령했지만 사실은 '죽을 때까지 싸워보겠다.'는 의미였다. 그 덕에 영국군은 무사히 철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